제주도, 한라산 구상나무 '풍년의 역설' 첫 규명

진은정 기자 / 기사승인 : 2026-06-19 12: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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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본부·국립백두대간수목원 공동 조사… 충실률·발아율 연계 ‘종자 품질 표준 지표’ 만든다-
▲ 2026년 한라산

[뉴스서울] 한라산 멸종위기종 구상나무(Abies koreana)는 열매가 풍성하게 열린 해일수록 씨앗 속은 비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열매를 맺으면 양분이 분산돼 알맹이 없는 빈 종자가 급증하는 ‘자원 희석 효과(Resource Dilution Effect)’ 때문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는 2022년부터 올해까지 5년간 한라산 구상나무의 개화·결실을 조사하고, 국립백두대간수목원과 함께 종자 충실률을 엑스레이(X-ray) 로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한라산 전역 성판악, 윗세오름, 영실, 방애오름 등 10개 조사구에 자생하는 성숙목 100그루를 대상으로 생육 형질과 연도별 암꽃 생산량, 종자 내부 건전성(충실률)을 함께 살핀 기초 생태 연구다.

구상나무는 3년 주기로 결실량이 오르내리는 해거리 현상을 보였다. 2022년과 2025년에 대규모로 열매를 맺은 반면, 2023·2024년과 올해는 결실량이 전년의 10% 수준으로 급감했다.

외형적 구과 생산량(量)과 종자의 질적 건전성(質)을 연계 분석한 결과, 많이 열린 해에 씨앗의 질이 떨어졌다.

구과 대풍해였던 2025년에는 종자 충실률이 30~40%대로 내려앉아, 겉은 풍성해도 속이 빈 종자 비율이 크게 늘었다. 겉모습은 풍성하지만, 양분이 분산돼 종자 내부에 배(Embryo)가 차지 않는 공립(空粒, 빈 종자) 비율이 급증한 것이다.

윗세오름에서는 구과가 적게 열린 2024년(흉해) 충실률이 58.76%였으나, 대량 결실한 2025년에는 29.97%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종자의 건전성은 해발고도와 입지에 따라 뚜렷하게 갈렸다.

해발 1,600m대인 성판악과 왕관릉, 방애오름 일대는 대풍해 때 나무 한 그루당 300개 안팎 개화하면서도 충실률을 50~60% 이상 유지해, 한라산 구상나무 집단의 핵심 종자 공급원(Seed Source)으로 확인됐다.

반면 저고도의 영실·큰두레왓과 기후 스트레스가 극심한 성판악 최상부(1,800m)는 대풍해에도 개화량이 40~60개에 그쳤고, 충실률도 20~30%대에 머물렀다. 이들 지역은 스스로 숲을 되살리는 천연갱신 능력을 잃은 쇠퇴 지역으로 진단됐다.

세계유산본부는 이번 분석을 토대로 구상나무 보전 전략을 다각화한다.

종자 채취 방식부터 이원화해, 대풍해에는 저고도 우세목에서 유전자원을 다량 수집하고 흉해·평년에는 고고도 건전목에서 알맹이가 꽉 찬 고품질 종자를 집중 수집해 종자 은행(Seed Bank)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계획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등 연구기관과 정례적으로 협력해 충실률과 실제 발아율·정착률을 연계한 ‘한라산 구상나무 종자 품질 표준 지표’도 정립할 예정이다.

김형은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장은 “열매의 겉모습만 보던 데서 나아가 씨앗 속이 실제로 차 있는지까지 따져, 한라산 구상나무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과학적으로 짚었다”며 “발아와 어린나무 정착까지 전 과정을 데이터로 쌓아 한라산 아고산대 침엽수림을 지키는 보전 지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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